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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리뷰/책 리뷰 2021. 12. 9. 03:24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박완서 작가의 단편 에세이 660편 중에서 35편을 엄선해서 엮은 책.
문장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 맛이 난다.
원 뭐 눈엔 x밖에 안 뵌다더니..., 넌 어째 그런 것 밖에 못 보냐? 난 부처님 한 분 우러르기에 그저 감지덕지 하느라 그런 건 눈 귀에도 안 들어오더니만...
내 눈으로 확인한 그의 비참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속아만 산 사람처럼, 정치가의 말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세무쟁이를 믿지 않던 버릇으로, 외판원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장사꾼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거지조차 못 믿었던 것이다.그 정도의 사윗감은 쌔고 쌨으려니 했다. 그러나 웬걸, 내가 가장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내세운 조건은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조건인지도 몰랐다.
"크게는 안 바라요. 그저 보통 사람이면 돼요." 가장 겸손한 척 가장 욕심 없는 척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얼마나 큰 욕심을 부렸었는지 모른다.계획한 시간을 예기치 않은 일에 빼앗길까봐 인색하게 굴다보니 거의 시계처럼 살려니 꿈이 용납되지 않는다.
낮에 꾸는 꿈이란 별건가.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가 즉 꿈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걸 기피하고 다만 시계처럼 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시계처럼 산다면 제법 정확하고 신용 있는 사람 티가 나지만 시계가 별건가. 시계도 결국은 기계의 일종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이 기계처럼 살아서 어쩌겠다는 걸까."느네들한테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나한테는 왜 안 할 자유가 없냐?" 하고 외치고 말았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를 미워하게 돼 있습니다.
해마다 키를 재보고 잘 먹고 무병해서 키가 많이 자란 놈을 칭찬해주는 할머니가 성적부터 묻고 안달을 하는 할머니보다 훨씬 귀여울 것 같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하루를 살아낸 만큼 내 아들과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저만치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죽음과 내 아들과의 동일시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면 요새도 가슴이 설렌다.
감상
정말 문장이 예쁜 책.
어른의 지혜 이런걸 차치하고서라도 한글 문장을 어떻게 써야 예쁜지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평소에 써오던 짧은 에세이에서도 거장의 필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내 글빨을 좀 올릴려면 한국 고전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한 책.
문장력을 제외하고서라도, 정말 좋은책이다.
오래 살아온 어른의 지혜, 나이가 들어서도 간직하고 있던 소녀 같은 마음, 순박함들이 잘 묻어나온다.
나도 그렇고 모두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싶을테지만,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 문학의 거장의 삶과 생각을 엿보면서 모두가 비슷한, 그저 하나의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단편집인만큼 번아웃이 왔을 때, 한편씩 골라서 읽으면 힐링할 수 있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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